에릭프롬의 존재냐 소유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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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2-11-05 16:5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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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언가가 우리의 내부에서 행하여지거나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어떤 행위가 나오는데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그 原因일 때, 나는 ‘행위를 강요받는다’고 말한다.
에서 스피노자는, 능동성과 수동성을 정신 작용의 두 가지 근본적인 양상으로 구별한다.
아리스토텔레스이 입장과 마찬가지로 <토마스 아퀴나스>의 입장도 능동성에 대한 현대적 관념과는 대조적이다. <행위>의 첫번째 기준은, 행위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.-하에서는, 그것이 그에게 복지(beatitudo)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. 모든 ‘능동적 정서(active affects)`는 필연적으로 좋다.
스피노자는 자신의 종(種)의 본성을(사람의 경우에는 인간의 본성을) 가장 잘 인식하는 것이 삶의 목표(goal)인 것이다. 아퀴나스에게도 내적인 평온과 정신적 인식, 즉< 관조적 생활(vita contemplativa)>에 전념하는 생활이 인간의 활동의 가장 고귀한 형태였다. 다시 말해, 우리가 인간의 본성의 전형(典刑)에 더 가까이 도달할수록 그만큼 우리 자유와 복지는 더 커지는 것이다. 그는, 보통 사람의 일상 생활, 즉 활동적 생활(vita activa)도 또한 소중하며, 모든 개인의 활동이 지향하는 목표(goal)가 복지이며, 그가 자신의 여러 가지 감정과 자신의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조건- 이조건이 결정적인 것이다. ‘정념(passions)`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아 여러 가지 정념롸 수동성에 관한 스피노자의 관념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, 그의 사고의 마지막-그리고 가장 현대적인- 단계, 즉 비합리적인 정념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은 정신적으로 병든 것이라고 하는 사고(思考)에까지 도달해야만…(투비컨티뉴드 )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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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프락시스의, 즉, 활동의 가장 고귀한 형태- 정치적 활동을 초월해서까지-는 진리 추구에 몰두하는 <관조적 생활>이라는 ... , 에릭프롬의 존재냐 소유냐인문사회레포트 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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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프락시스의, 즉, 활동의 가장 고귀한 형태- 정치적 활동을 초월해서까지-는 진리 추구에 몰두하는 <관조적 생활>이라는 ...
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프락시스의, 즉, 활동의 가장 고귀한 형태- 정치적 활동을 초월해서까지-는 진리 추구에 몰두하는 <관조적 생활>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, 그가 오늘날 우리가 능동성 및 수동성에 대해 갖는 관념과 똑같은 관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주 명백해진다.